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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의 한적한 시골 마을. 가을이면 어김없이 이곳으로 돌아오는 딸이 있습니다. 바로 48살의 이은경 씨. 그녀는 해마다 부모님이 키우는 사과밭을 돕기 위해 도시의 삶을 잠시 멈추고 45일간 친정으로 향합니다.

이곳 사과밭은 올해로 여든을 넘긴 이동묵·조수희 부부가 평생 정성을 들여 가꿔온 삶의 터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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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열매지만, 정성이 깃든 '루비에스' 미니 사과는 보기에도 사랑스럽고 맛도 뛰어납니다. 하지만 나이 든 부모에게 판로 개척은 큰 숙제였죠.

3년 전, 딸 은경 씨는 이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평소 여행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던 경험을 살려, 온라인을 통해 사과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판매는 입소문을 타고 어느새 하루 150박스를 넘기게 되었죠. 어머니는 딸이 고맙기만 하지만, 아버지에겐 딸의 방식이 마냥 마음에 들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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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평생 농사로 다져진 성격답게, 매사에 서두릅니다. 하루라도 허투루 보내는 걸 못 견디는 성미에, 딸에게도 늘 “빨리, 빨리”를 외칩니다.

어느 날은 치과 예약이 오후인데도 아침부터 재촉하다 못해 혼자 나가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성급함 뒤엔 사연이 있습니다. 몇 해 전 밭에서 쓰러졌던 아버지는 뇌출혈로 큰 고비를 넘겼고, 전두엽 손상으로 인해 성격까지 바뀌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를 간병한 사람이 바로 은경 씨였습니다. 누구보다 아버지를 걱정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바로 딸입니다.

 

딸의 도움이 고마운 어머니는 속이 짠합니다. 아이가 없어 시험관 시술까지 준비하던 은경 씨가 부모 일을 돕기 위해 치료를 미룬 것을 알기 때문이죠. 어머니는 딸에게 좋은 약을 지어주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가족의 정은 조용히 흐릅니다. 때로는 고된 노동에, 때로는 사소한 말다툼에 눈물이 나지만, 딸은 그저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할 뿐입니다.

 

주말이 되어 형제들이 모인 날, 은경 씨는 부모님을 사진관으로 모십니다. 함께한 이 가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어머니는 즐거워하지만, 아버지는 “사진이 뭐가 중하냐”며 끝내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그날, 모두가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도 은경 씨의 마음 한쪽은 무거웠고, 결국 눈물이 흘렀습니다.

 

은경 씨에게 이 45일은 단순한 ‘도움’이 아닙니다.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계절을 꼭 붙잡고 싶은 딸의 진심입니다. 매일 티격태격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은 누구보다 깊습니다.

사과는 수확이 끝나면 없어지지만, 가족과 함께한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이 가을, 누군가에겐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평생 간직할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